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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시멘트로 땜질한 오죽헌…'신사임당이 운다'

입력 2014-10-16 22:14 수정 2014-10-16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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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강릉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나 자란 곳입니다. 5천 원 권의 배경 그림으로도 쓰일 만큼 유명한 문화재이고 강릉의 상징이기도 하죠. 그런데 조선시대에 지어진 오죽헌이 복원 사업을 거치면서 중요한 건물들을 철거하거나, 콘크리트를 사용해 건물을 신축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부실한 문화재 관리를 저희들이 지속적으로 고발해왔고, 이에 대한 수정·교정도 지켜보고 있는데요. 오늘(16일) 일곱 번째로 오죽헌을 찾아가 봤습니다.

정아람 기자입니다.

[기자]

오천 원 지폐의 앞면 그림에 등장하는 강릉 오죽헌입니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나고 자란 오죽헌은 15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가옥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뭔가 이상합니다.

흙이 채워져 있어야 할 오죽헌 기단 바닥에 시멘트가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마당 곳곳에도 시멘트가 발려 있습니다.

사당인 문성사, 그리고 입구인 자경문과 입지문은 아예 통째로 콘크리트입니다.

[이희봉 명예교수/중앙대 건축학과 : 시멘트를 바르는 것은 문화재에 대한 모독입니다. 보수했다 하면 시멘트로 작업을 많이 하는데 고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죽헌 곳곳의 현판은 마치 한글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보물 제165호인 오죽헌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걸까.

JTBC 취재진은 오죽헌의 역사를 하나하나 추적해봤습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1976년 오죽헌 정화사업을 한다며 손을 댔습니다.

그런데 오죽헌의 안채, 곳간채는 물론 조선 정조의 어명으로 건립된 어제각이 철거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대문은 세 칸인 솟을삼문에서 한 칸인 사주문으로 바뀌었는데, 두 개로 늘어난 데다 규모를 지나치게 키워 뒤에 있는 본채가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과거에 없던 문성사와 자경문 등은 콘크리트로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오죽헌 주변을 정비한다는 이유로 2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지방유형문화재 제40호 청풍당도 철거했습니다.

[권순완/과거 청풍당 거주자 : 상당히 오래된 집이고 구조나 건축 양식이 특별했나 봐요. 그게 싹 하루아침에 없어졌더라고요.]

후대에 이어진 복원 사업에서도 문제는 계속됩니다.

1987년 어제각을 복원했지만 위치와 배치가 엉뚱하게 바뀌었고, 1988년엔 콘크리트로 만든 입지문이 세워졌습니다.

1996년에는 1억 4천여만 원을 들여 안채, 곳간채를 복원했지만 마루와 기단 등이 예전과 크게 달라졌습니다.

[은정태/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 복원을 따질 가치가 없는 거예요. 복원이 잘 되었느냐 못 되었느냐. 이건 복원이 아니에요, 새롭게 만든 거지.]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오죽헌을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혜문 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 원형이 훼손되거나 변형이 가해진다면 제작 의도와 전승 취지가 훼손되기 때문에 원형 보존의 원칙이 철저히 지켜져야 합니다.]

지금도 오죽헌 바로 옆에선 90억 원이 투입된 선비문화체험관 신축 공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옛 모습을 잃어버린 오죽헌 주변으로 새로운 건물들만 하나둘 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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