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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기울고 갈라진 첨성대, 어쩌다 이 지경?

입력 2014-09-23 21:55 수정 2014-09-23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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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23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추분입니다. 경주에 있는 첨성대에선 추분이 되면 빛이 밑바닥까지 완전히 들어와 비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첨성대가 최근 들어 급격히 기울고 약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심각성을 알고도 제때 대응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숭례문 부실 복원으로 드러난 것처럼 우리의 문화재 관리 실태는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저희는 이 문제를 첨성대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시리즈로 기획하고 있는데요. JTBC가 무관심 속에 병들어가는 문화재들을 집중 취재했습니다.

오늘 첫번째로 첨성대, 정아람 기자입니다.

[기자]

신라 선덕여왕 때 세워진 경주 첨성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천문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1400여 년의 세월을 굳건히 버텨왔습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첨성대가 급격히 약해지고 있습니다.

육안으로 봐도 확연히 드러날 정도입니다.

맨위의 정자석은 옆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그 아래 석재는 제자리를 벗어나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입니다.

곳곳에 깨진 석재도 보입니다.

새로 생긴 미세한 균열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석재들은 마치 이가 빠진 것처럼 벌어져 팔이 쑥 들어가고도 공간이 한참 남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첨성대가 점점 기울어 간다는 겁니다.

지난 1월 감사원 조사에선 20cm가 기울었다는 결과가 나와 충격을 줬습니다.

[정연식/서울여대 사학과 교수 : 지금 현상 자체가 한쪽으로 쏠려있는 상태입니다. 위에서 평면도로 보면 딱 맞지 않습니다. 한쪽으로 쏠려 있는데 기울어 있다는 말이죠.]

취재진은 첨성대의 기울어지는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정밀 분석해보기로 했습니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의 도움을 받아 3차원 레이저 스캐너를 동원해 첨성대를 정밀 측량해봤습니다.

3D로 구현한 첨성대는 북쪽으로 약 23cm 기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8개월 전 감사원 조사 당시보다 3cm 정도 더 기운 것으로 측정이 된 겁니다.

석재를 쌓아 올린 몸통에서는 곳곳에 벌어진 틈새가 보입니다.

석재의 틈새를 모두 더한 뒤 전체적으로 얼마나 벌어졌는지 평균치를 내봤습니다.

남쪽에 위치한 석재는 평균 4cm, 북쪽의 경우엔 약 8cm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남북의 석재 틈새가 2배 넘게 차이가 난 겁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걸까. 첨성대가 북쪽으로 기울면서 무게가 더 실리게 됐고, 북쪽에 있는 석재의 사이가 더 크게 벌어진 겁니다.

[이수곤/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 벌어지면서 붙어있던 게 어긋나니까 힘의 균형을 잃어버려요. 그러면서 힘의 균형이 다시 재분산돼서 금이 가는 거예요.]

이번엔 3D로 구현된 첨성대를 위에서 내려다 봤습니다.

정자석이 심하게 뒤틀리고 몸통의 기단이 북쪽으로 기운 모습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첨성대가 북쪽으로 기운 이유는 뭘까. 북쪽의 지반이 가라앉는 게 원인으로 추정됩니다.

첨성대 북쪽 지반은 현재 약 17cm 내려 앉았는데, 2001년과 비교하면 약 10cm 정도 더 가라앉았습니다.

[김장훈/아주대 건축학과 교수 : (동쪽과 북쪽의) 돌과 돌 사이 공기층들이 남쪽과 서쪽에 비해 크다고 보고돼 있습니다. 그 수분층에서 물이 빠져 공간들이 닫히면서 동북 방향으로 기운 것이 아닌가.]

1962년 국보 31호로 지정된 첨성대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취재진은 첨성대의 관리 이력을 하나 하나 추적해 봤습니다.

먼저 지난 50여 년 동안 첨성대에 대한 정밀 보수 관리는 단 3건 뿐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2010년부터 시작돼 2차례 이뤄진 정기 조사는 조사자가 현장을 찾아 눈으로 확인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문화재청 관계자 : 첨성대 정기 조사는 두 번에 걸쳐 했습니다. 그전에는 법이 없었어요. 정기조사해야 한다는 법이 생긴 지 얼마 안 됐습니다.]

결국 지난 8월 문화재청이 발표한 특별 종합점검에서 첨성대는 밑에서 두번째인 'D'등급을 받았습니다.

오랜 세월 첨성대가 병들도록 방치한 건 경주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경주시는 2009년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사를 통해 첨성대가 기운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지난해 뒤늦게 1억7천만원 예산을 들여 보수 정비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7천만원을 안내판 정비하는데 쓴 걸로 나타났습니다.

나머지 1억원을 들인 '정밀 구조 안전진단' 용역은 아직 시작도 못했습니다.

지반 상태를 조사하는 게 중요한데 정작 용역 발주 과정에서 이를 누락한 사실이 감사원 조사 결과 드러난 겁니다.

[경주시 문화재과 관계자 : 공사를 진행한 게 없고 감사원이 지적한 내용을 수행하기 위해 준비 중에 있습니다. 공사 계획을 짜고 있는 중이죠.]

전문가들은 문화재청과 경주시의 소극적인 대처가 첨성대 문제를 악화했다고 지적합니다.

[김장훈/아주대 건축학과 교수 : 첨성대가 돌과 돌 사이 두께가 넓은 돌이라 해도 그런 속도로 진행되면 절대로 방치해선 안 되고 예의주시해서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 첨성대는 오늘도 서서히 기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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