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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이성곤이 아버지 이순철에게 띄우는 편지

입력 2014-08-0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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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이성곤이 아버지 이순철에게 띄우는 편지


일간스포츠는 지난 7월28일자에 이순철 베이스볼긱 해설위원이 아들 이성곤(22·두산)에게 띄우는 편지를 전했습니다. 아버지는 편지에서 프로야구 레전드이자 유명 해설위원을 아빠로 둔 아들에게 미안함을 전했습니다.

이번에는 아들이 답장을 했습니다. 이성곤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2014년 2차 신인드래프트 3라운드 32순위로 두산에 입단했습니다. 아마 시절에는 3루수 등 내야수를 거쳤고, 현재는 외야수 수업도 함께 받고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야구를 업으로 선택한 아들은 끊임없이 '아버지의 그늘'과 싸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늘'이란 성곤을 한 명의 야구 선수로 바라보기보다 '이순철의 아들'로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을 뜻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는 "아버지 덕분에 늘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합니다. 또래에 비해 의젓하고 말을 가지런하게 배열할 수 있는 선수였습니다.


아버지께.

지난번 보내주신 편지는 모두 다 읽어봤습니다. 평소 하시던 말씀을 그대로 하셨더라고요. 사실, 제가 야구를 시작한 뒤로 아버지를 뵙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도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집에 가면 아버지가 방송 해설 일정으로 집을 비우실 때도 있고요. 평소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 받다가 태어나 처음으로 편지글로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어요.

아빠의 진심처럼, 저도 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어요. 아빠. 저는 늘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서 행복하다고 말해왔어요. 학창시절은 물론이고 프로에 입단해서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한때는 마냥 좋기만 할 때도 있었어요. 아버지가 이순철이기에 남들이 할 수 없는 경험과 기회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힘들 때도 있어요. 야구선수 이성곤에 대한 모든 평가가 아버지를 기준점으로 시작돼 답답해요. 어릴 때부터 언론에 노출이 되면서, 선수 이성곤보다 '누구의 아들 이성곤'으로 평가받는 데 익숙합니다. 이제 '아빠만큼 해야 한다', '아빠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은 이제 농담 반 진담 반이라 생각하고 넘기고 있어요. 아버지가 말씀하셨듯 제가 극복해야 할 숙제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서 선택한 야구였어요. 갓난아기 때부터 장난감 야구공과 배트, 글러브를 갖고 놀았습니다. 친구들과 동네 야구를 하며 부지런히 골목을 누볐고요. 야구는 제게 너무나 당연한 숙명이었던 것 같아요. 야구 말고는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었어요. 부모님이 만류하셨지만 끝까지 이 일을 평생의 업으로 선택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아빠는 한 번도 제 타격이나 수비에 대해 따로 지도한 적이 없으셨어요.^-^ 언젠가 말씀하셨죠. '내가 선수 출신이지만, 너의 야구에 손댈 수 없다. 너에게는 감독과 타격 코치가 따로 있다. 아비가 별도로 지도를 하면 그분들께 누가 되는 것이다. 예의가 아니다. 또한 고작 한두 경기 보고 섣불리 지도했다가 괜한 혼동만 줄 수 있다. 너의 야구는 스스로 풀어나가라.' 저 역시 동의했습니다. 한 번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드린 적이 없었던 이유에요.

대신 독학을 시작했어요.^^ 몰래 아버지 현역시절 동영상을 찾아봤어요. 야구 서적을 읽으며 아빠 타격에 대해 공부도 했고요. 그거 아세요? 아버지 방을 뒤져서 수첩이나 노트도 찾아 읽은 거요. 현역시절에 쓰시던 수첩이었는데 상대 투수의 장점과 약점, 피칭 유형을 정리해 놓으셨더라고요. 이따금 아빠의 현역 시절과 제 지금의 모습이 겹쳐서 '피식' 웃을 때도 있었어요. 프로선수들이 꾸준하게 생각과 기록, 그날의 경기를 정리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제 야구는 이제 시작 단계라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편지에서 '3루수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지요.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옮기면서 새롭게 배우고 경험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조금 수월한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3루수에 애착이 있어요. 아직 생각하는 단계라고 여겨주시고 조금 더 지켜봐 주세요.

아빠. 집에서는 제가 별로 살가운 편이 못되지요. 여느 집처럼 서로 만나면 간단한 안부만 주고받는 무뚝뚝한 부자에요. 이따금 카톡으로 대화를 나눌 때 저도 참 행복합니다. 자주 연락 드릴게요. 중계 때문에 출장이 잦으실 텐데 늘 건강 조심하셔요.

성곤 올림


정리=서지영 기자 saltdol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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