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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철 "내 아들이자 후배, 성곤에게 보내는 편지"

입력 2014-07-2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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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철 "내 아들이자 후배, 성곤에게 보내는 편지"


아빠는 아들에게 늘 미안합니다. 야구선수가 됐는데 하필이면 아버지가 프로야구 '레전드' 이순철(53)입니다. 이순철 위원은 현역시절 '타이거즈'의 간판 스타였습니다. 팀 역사상 유일한 신인왕이었습니다. 4차례 골든글러브와 3차례 도루왕, 2차례 득점왕에 오르며 해태 왕조의 중심에 섰습니다. 은퇴 후에는 감독과 수석코치를 거친 후 프로야구 인기 해설자로 복귀했습니다. 방송에서 혈연·학연·지연을 떠나 야구에 필요한 말은 모두 하고 마는 아버지는 야구를 업으로 결정한 아들이 못내 안쓰럽습니다.

아들 이성곤(22·두산)은 아버지에게 늘 죄송합니다. 숱한 반대를 물리치고 프로 선수가 됐습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2014년 2차 신인드래프트 3라운드 32순위로 프로에 입단한 그는 아직 1군 출장 기록이 없습니다. 이성곤에게 아빠는 넘기에는 큰 산, 바라만 보기에도 눈이 부신 사람,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딛고 일어서야 할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지난 18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퓨처스 올스타전에서 만났습니다. 해설자 아버지는 북부리그 올스타로 나선 아들의 경기를 중계했습니다. 역시나 냉정하고 무뚝뚝한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아들은 "야구를 더 잘하겠다"며 그저 고개를 숙입니다. 아빠도 압니다. 아들의 고단함을요. 하지만 아버지이기 전에 야구 선배, 객관성을 지향해야 할 해설자이기에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마음 속 깊이 간직했습니다. 이순철 베이스볼긱 위원이 아들 성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짓글 형식으로 전합니다.

성곤에게.

폭우가 쏟아진다. 이내 멈추더니 햇빛이 쨍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네. 야구선수들은 여름이 참 얄궂다. 성곤아, 더위 속에 야구하느라 고생이 많다. 푹푹 찌는 날씨에 야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빠도 잘 안단다.

성곤아. 2014 시즌도 벌써 중반에 접어들었다. 올해는 우리 둘 모두 새롭게 시작하는 해였지. 그라운드를 떠나 해설자로 돌아온 나와 명문 두산에 입단한 너. 부끄럽지 않게, 나 자신을 속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약속이 얼마나 지켜졌을지…. 새삼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올스타전에서 너와 함께 챔피언스필드에 서 있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비록 과거 무등구장은 아니지만 아빠가 현역 시절 터를 일군 곳에 장성한 아들과 있는 것 아니겠니. 표현은 안 했지만 아빠는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큰 키와 당당한 체격을 가진 네가 유난히 늠름해 보이더라. 방송에서도 말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좌우지간 키 하나는 나를 닮지 않아서 마음에 든단다. ^-^

네가 처음 야구를 하겠다고 떼를 쓰던 기억이 난다. 아기 때부터 보고 듣는 건 전부 야구였겠지. TV에서 아빠가 야구 하는 걸 보면 좋다고 만세를 불렀지. 집에 사다놓은 장난감 배트로 열심히 스윙을 하면서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을 것이다. 당시 해태는 응원을 할 때 선수의 자녀 이름을 넣었어. 타이거즈 팬이 모두 '성곤 아빠 잘해라' '성곤 아빠 안타'라고 외쳤지. 그때 너는 5살 꼬마였어. 그 뜨거운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빠는 네가 야구 선수가 되는 걸 반대했어. 사실 정말 야구만은 안 했으면 싶었다. 평생 야구인으로 살아온 아빠는 현장을 잘 안다. 날마다 이어지는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지 않으면 부상으로 영영 야구계를 떠날 수 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타고난 자질이 없는 사람은 도태되는 냉정한 세계다. 특히 너에게는 '아버지 이순철'을 극복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일거수일투족 내 젊은 시절과 비교될 거야. 때로는 내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모진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걸 아빠도 잘 안다. 언젠가 1군 무대에 올라가면 어깨에 짊어진 짐의 무게가 더 무거워질 거야. 아빠가 많이 미안하다. 하지만, 이 또한 너의 숙명이고 견뎌내야 할 몫이다.

무뚝뚝한 아빠는 너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못한다. 집에서는 일절 야구 이외의 말은 안하니…. 이따금 네게 '카카오톡'을 보내 이런저런 야구 이야기를 하는 게 전부야. 아들은 아빠보다 살갑다. 이따금 휴대폰으로 너의 타격폼을 담은 동영상을 보내주곤 하잖니. '조언을 달라'는 너의 문자를 볼 때마다 아비는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남들 다 하는 하트 표시 하나 없이 '스트라이드가 좁다, 배트 스피드가 떨어진다, 어깨가 너무 빨리 열린다'는 기술적인 답을 하는 아빠가 서운하진 않을는지….

얼마 전 아빠가 너에게 크게 화를 냈던 것 기억하니. 한 달 전이었나. 우연히 네가 함평 2군 구장에서 야구하는 모습을 중계로 봤단다. 타석에 선 네가 방망이를 돌리고 있더라. 그런데 깜짝 놀랐다. 배트 스피드가 정말 느렸어. 우려될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더라. 아마 너는 그날 저녁 아빠가 너에게 했던 말 중 가장 모진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이순철 위원의 글은 베이스볼긱에서 2편이 이어집니다.)

정리=서지영 기자 saltdol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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