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세월호 사고 유족들 역시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100일이 지났지만 세월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유족들의 마르지 않는 눈물을 취재했습니다.
이유정 기자입니다.
[기자]
단원고 2학년 고 안주현 군의 어머니인 김정해 씨.
사고가 일어난 지 100일이 지났지만 집안 곳곳에 아들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평소 음악을 좋아했던 아들은 수학여행 때도 기타를 들고 세월호에 올랐습니다.
[김정해/안주현 군 어머니 : 최근에 사준 기타가 지금 배 안에 있어요. 맨 처음에 샀던 건 49재 때 태워 보내줬어요. 두 번째 것이 저기 지금 전자 기타.]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도 믿기지 않았던 어머니.
[김정해/안주현 군 어머니 : 뉴스를 봤는데 324명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떠서 안심했어요. 학교에 9시 40분쯤 전화했더니 행정실에서 괜찮다고 아이들 다 구조됐다고.]
희망도 잠깐, 그 후 100일은 절망의 나날이었습니다.
[김정해/안주현 군 어머니 : 16일부터 그 바닷가 앞에서 엄청 울었어요. 계속 잠도 안 자고…]
100일이 지난 지금 장소만 바뀌었을 뿐, 눈물은 마르지 않았습니다.
생업을 접고 국회로 나섰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월호 후유증에 고통받는 건 엄마만이 아니었습니다.
[김정해/안주현 군 어머니 : 주영이(동생)가 더 심했던 것 같아요. 장례식장에서 머리 박았다니까요. 엄마, 이준석 선장 법원 언제 가는 거냐고. 자기 한 번 데려가 달라고.]
세월호 특례법이 처리되지 않으면서 대부분 유족들이 생업을 접고, 국회와 광화문으로 단식 농성에 나가고 있는 상황.
단원고 2학년 7반 고 이민우 군 아버지 이종철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후유증이 심각하지만,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이종철/이민우 군 아버지 : (시신 찾은 후) 한 달 정도는 살아있던 모습이 계속 떠올랐는데 지금은 마지막 건져 올린 모습만 생각나서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단원고 2학년 고 제세호 군 아버지 제삼열씨는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도 진도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남아있는 실종자 가족들과 잠수부들을 위한 식사를 대접하는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아이들 생전 영상을 손에 놓지 못하는 아버지.
[제삼열/제세호 군 아버지 : 이거 틀어주면 다 울었어요. 한 반에 39명인데 한 명 살고 다 죽어 버렸으니. 선생님까지 다 죽었어요.]
세월호 침몰 이후 몸무게가 9kg 이상 빠졌습니다.
[제삼열/제세호 군 아버지 : 제대로 먹은 지가 솔직히 2주 밖에 안 됐어요. 그 슬픔이 밀려오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그놈 방에 들어가고 그러면 눈물 나고.]
제씨가 자원봉사를 한 날, 고 안주현군 어머니인 김씨도 진도를 찾았습니다.
세월호 실종자 10명 중 1명인 단원고 양승진 선생님이, 김씨의 중학교 은사였기 때문입니다.
[김정해/안주현 군 어머니 : 이번 일을 통해서 정말… 좋게 만나야 할 분이었는데 다들 어떻게 이렇게 사이를 알게 돼서 그렇게 됐네요.]
진도체육관에서 남편 제자 김씨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양 교사 아내 유백형 씨.
[김정해/안주현 군 어머니 : 사모님을 지척에 두고도 못 뵀다는 게 제가 정말 못된 제자네요.]
[유백형/양승진 교사 아내 : 이렇게 또 뵈었다는 게 나도 반갑네요. 남편을 대신해서.]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헤어지는 두 사람, 마치 오랜 지인처럼 서로를 껴안은 채 말없이 아픔을 나눕니다.
100일이 됐지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제삼열/제세호 군 아버지 : 아직 우리는 현재진행형입니다. 100일이 다 되어 가는데 눈물이 말랐지 않느냐, 천만에요. 애들 사진만 쳐다봐도 눈물 날 때가 있어요. 어떻게 자기들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고. 한 명도 못 살렸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