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세월호 사고 발생 다음 날인 4월 17일은 가족들이 '생존'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시각 구조에 전력을 쏟아야 할 해경은 눈가림에만 급급한 모습이었습니다.
송지영 기자입니다.
[기자]
사고 다음 날인 4월 17일 새벽 1시. 청와대에서 해경에 야간 잠수작업을 문의합니다.
[청와대/4월 17일 새벽 1시 11분 : 1시 20분에 해경 3009호에서 출발해서 1시 반부터 잠수작업을 시작한다고 해군 쪽에서는 이야기하는데….]
그러자 해경은 유족들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시도한다는 듯한 취지로 답변을 합니다.
[해경/4월 17일 새벽 1시 11분 : 지금 유족들이 하도 성화를 하기 때문에 저희가 정조 전에 한 번 시도를 하려고 있는 거예요.]
하지만 결국은, 당시 강한 조류 탓에 수색은 물론 선체 진입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더딘 구조를 질타하는 여론이 빗발치자, 청와대와 해경은 언론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청와대/4월 17일 오전 9시 52분 : 언론에 하도 XX같은 보도가 막 뜨니까 뜰 때마다 바로바로 전화가 와요.]
[해경/4월 17일 오전 9시 52분 : 네. 아니 왜 어떤 근거로 저런 보도가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17일 오후에 진행된 해경 긴급 화상회의에선, 이틀 째 구조 성과가 없자 '흉내'라도 내라는 지시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해경/4월 17일 오후 12시 13분 : 일단 뚫는 흉내라도 내고 이런 것까지 해봤다는 것이 나을 것 같단 내 생각이고….]
해경이 실종자 구조에 적극 나서기보단, 사회 비난 여론을 의식한 생색내기에 더 급급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