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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 "KIA는 날 잡을 생각 없었다"

입력 2014-01-23 08:02 수정 2014-01-2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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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 "KIA는 날 잡을 생각 없었다"


이용규(29)의 야구 인생은 2013년 겨울 엄청난 전환점을 맞았다. 프리 에이전트(FA) 자격을 얻은 그는 스토브리그에서 KIA를 떠나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다. 발표된 조건은 4년 총액 67억원. 2004년 LG에서 데뷔했던 이용규는 그해 11월 2일 KIA로 트레이드됐고, 9년이 흐른 2013년 11월 17일 두 손에 67억원을 거머쥐었다. 역대 FA 계약 규모에서 강민호(롯데, 4년 75억원)와 정근우(한화, 4년 70억원)에 이은 당당한 '넘버 3'이다.

2004년 LG는 이용규 대신 이대형을 선택했고, LG에서 제대로 기회를 잡지 못했던 이용규는 KIA에서 국가대표로 성장했다. 9년이 지나 이용규는 KIA를 떠났고, 그의 빈자리에는 이대형이 들어왔다. 콧수염으로 터프한 이미지까지 지닌 이용규는 악착같은 플레이로 '근성'이 잘 어울리는 선수다. 정근우와 함께 국가대표 테이블세터인 이용규의 가세로 한화는 기동력은 물론 팀 플레이의 대변화까지 노리고 있다. 베이스볼긱은 이용규를 새해 초에 만나 '회자정리(會者定離)', '악바리', '도루', 3가지 키워드로 인터뷰를 나눴다. 베이스볼긱은 일간스포츠가 만든 최초의 모바일 야구신문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

- 2004년 2차 2라운드 15번으로 LG에서 프로에 데뷔했다. 당시 52경기를 뛰었더라. 첫 해 프로 무대는 어땠나.

"내가 덕수정보고를 졸업하고 LG에 입단했을 때는 외야에 선수가 많았다. 빠른 선수가 많고 스타일도 대개 비슷했다. 대형이형은 2003년(2차 2라운드 11번)에 입단해서 1군에서 어느 정도 검증을 받았다. 신인으로서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었다. 시즌 후반기에 주로 대주자, 대수비 등으로 나간 기억이 난다." (출장 경기 수는 52경기였지만 타격 성적은 62타수 8안타(0.129)였다. 도루는 1개였다)

- 당시 외야 라인업이 어땠나.

"이병규(9번) 선배도 일본 진출 전이라 뛰고 있었고, 박용택 선배도 주전이었다. 외국인 타자로 알 마틴이 외야수로 출전했다. 최만호 선배가 백업으로 뒤를 받치고 있었다."

- 경기 수를 보니 이대형은 그해 12경기에만 출전했다.

"대형이 형은 어깨 수술을 받고 재활하느라 2004년엔 별로 뛰지 못했다. 그래도 2003년 뭔가 보여준 것이 있었다."

- 2004시즌이 끝나고 KIA로 트레이드 됐다. 프로 첫 해를 뛰고 팀을 옮긴 심정은.
(2004년 11월 LG는 홍현우와 이용규를 KIA에 보내고 투수 이원식과 소소경을 받아들였다)

"어린 마음에 솔직히 많이 복잡했다. 그동안 서울 생활(성동초-잠신중-덕수정보고)만 해왔고, 친구들도 다 서울에 있었다. 그때까지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한 적이 없었다. 광주에 친구도, 아는 형도 별로 없었다. 어린 나이에 갑자기 타지로 가게 된 것이다. 11월초 KIA에 와서도 힘들었다. 제주도 마무리 캠프 기간이었는데, 나는 발목이 안 좋아서 훈련도 제대로 못했다."

- 마무리 캠프도 제대로 못하고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고 했는데 2005년 KIA에서 1군 124경기에 출장했다. 단번에 주전이 된 것인데.

"스프링캠프에서 당시 유남호 감독이 나를 데려가서 잘 봐주셨다. 그때 당시 KIA에 빠른 선수가 부족한 편이었다. 어리고 누상에서 빠른 스타일을 좋게 봐주셔서 기회를 많이 주셨다. KIA에서 자리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됐다.

- 2005시즌 도중(7월)에 KIA는 유남호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고, 서정환 감독대행으로 시즌을 마쳤다.

"전반기 마치고 팀이 최하위로 처진 것이 오히려 나에겐 기회였다. 경기는 거의 뛰었는데 타석 수는 후반기가 더 많았다. 후반기엔 서정환 감독님이 2번으로 고정시켜놓고 기회를 줬다. 경기에 나가면서 실력이 늘더라. 전반기 타율이 2할5푼이었는데, 후반기에는 2할9푼 정도 쳤다. 경기에 자주, 많이 나가니깐 야구를 보는 시야와 야구 실력이 늘었다. 누상에서든 타석에서든 경험이 중요했다."

(2005년 이용규는 124경기 479타석에서 타율 0.266 110안타 57득점 31도루를 기록했다. LG의 이대형은 107경기 142타석에 나와 타율 0.268 34안타 40득점 37도루를 기록했다. 이용규는 주전 외야 자리를 차지했고, 이대형은 쟁쟁한 LG 외야진에서 대주자 대수비 등으로 출장하는 처지였다. 이용규는 2006년 최다안타 1위, 타율 3위(0.318)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이대형은 이병규가 일본으로 진출한 2007년 125경기(509타석)를 뛰며 타율 0.308 53도루를 기록하며 외야 주전이 됐다)

- KIA로 이적하고 2005년 스프링캠프에서 이종범 현재 한화 코치와 룸메이트 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는데.

"야간 운동이나 배팅 연습 등을 할 때마다 한 번씩 조언해 주셨다. 우상이고 대선배이니 귀 기울이고 따라 할려고 했다. 내 생각도 변화 되고 많이 도움이 됐다. 2005년 풀타임을 뛰고 나서 2006년부터 방망이를 짧게 잡고 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종범 선배의 영향이었다."

- 트레이드로 팀을 옮겼는데, KIA와 궁합이 잘 맞은 것 같다.

"내가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다. 시합 나가는 타이밍이랄까, 출장 기회를 얻은 부분도 그렇고 KIA에서 기회가 많이 찾아온 것이다. 다행스럽게 감독님이 기용을 많이 해줬고. 전반기에 못하고 그럴 때 2군으로 내려갔더라면 자리 잡기 힘들었을 것이다. 선발 라인업에서 빠지더라도 1군을 따라다니며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보는게 도움이 많이 됐다."

- FA가 되고 나서 자유의지로 한화를 선택했다. KIA에서 이용규가 떠난 빈 자리에 공교롭게 이대형이 왔다.

"그런 것 보다는 나의 선택이 있고, 대형이 형의 선택이라고 본다. 한화가 대우를 잘 해 준 만큼 나는 한화를 선택한 것이고 여기 와서 기대만큼 성적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 대형이형도 LG에서 힘들었던 점이 있었을 것이다. KIA와 FA 계약을 잘하고 간 것은 진심어린 축하를 해 주고 싶고, 잘 됐으면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FA 선수들이 다들 잘 했으면 좋겠다. '먹튀' 소리 보다는 받은 만큼 성적을 올려줬으면. 왜냐하면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후배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구단이 왜 FA에게 투자를 해야 하는지를 우리가 몸소 보여줘야 한다. 물론 잘 해야 한다는 부담이 나부터도 되지만, 다들 잘 했으면 좋겠다."

- '배신자'라고 하는 KIA 팬들이 있다.

"KIA와 우선협상 과정에서 힘든 부분이 많았다. 내가 언론에다 한 얘기도 있고, 내가 떠난 후 구단에서도 기사를 낸 것도 그렇고. 솔직히 내가 경솔했던 부분도 인정하고, 구단에 섭섭했던 것도 있고 그랬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떠났고, 이러쿵저러쿵 계속 구설수로 오르고 싶지 않았다. 말을 아꼈다가 나중에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 때 꺼내고 싶은게 당시 내 마음이었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야 나올 수 있는 얘기라 생각했다."

- 지금쯤이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시기인가.

"오늘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가 나올 거 같았다. 얘기할 생각으로 나왔다. 내가 KIA를 떠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나를 강하게 잡으려는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FA 자격을 얻고, 프랜차이즈 선수로 KIA에 남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계약 마감 전날에서야 금액을 얘기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봉 협상도 2~3주 걸리는데 FA 계약을 이틀 안에 조율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마지막 제시 금액을 받고 솔직하게 얘기해서, KIA 선수로서 내 나름대로 역대 최고 대우를 해줬으면 했다. 그런데 제시액은 내 생각보다 아니었다. 금액을 언론에 얘기 안 하기로 했다. 그런데 나중에 60억 제시했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런 액수는 듣지 못했다. 연초에 KIA 프런트에게 전화 연락을 해 새해 인사를 드렸다. 섭섭했던 것을 얘기도 하고, 그동안 고마웠던 감사 인사도 했다."

- KIA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을 것 같다.

"이적 직후에 '그동안 감사했다, 고마웠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가식적인 것 같았다. KIA 팬들 얘기도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감사하는 부분이 많다. 내가 지금 있게 된 이유도, 유남호 전 감독부터 시작해서 KIA가 나에게 기회를 줬고, KIA 팬들이 응원해주셔서 성장해왔다고 생각한다. KIA에서 9년 간의 시간은 어떤 좋은 표현을 해도 모자라겠지만, 감사한 마음이 크다. 내가 경솔한 부분도 있었고 죄송한 마음도 크다. 그라운드에서, 한화라는 팀에서 내가 잘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인사를 못한 게 아쉽다. 그게 참 그렇다."

- KIA를 떠나 한화 유니폼을 입고 새 출발이다.

"프로 세계에서 내가 선택한 길이고, 한화를 선택한 거다. 한화에서 나의 몸값(67억원)과 보상금(6억 8000만원)까지 포함하면 한화가 나를 생각하는 값어치가 엄청나다. 좋은 대우를 해준 것이다. 이제는 한화라는 팀에서 전성기 때의 잘한 모습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솔직히 부담이 많다. 처음 프로에 뛴다고 생각으로 4년 동안 해 볼 생각이다. 밑에 후배들과도 눈높이를 맞춰고, 사소한 것부터 바꿔야한다. 그라운드에서 행동도, 성적이 안 좋더라도 보여줘야 할 것들이 있다. 나를 영입한 의도가 내 개인 실력도 실력이지만, 팀 컬러도 변화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 같더라. 야구 외적인 부분에서 중고참으로서 해야 할 것도 많아져 힘들겠지만, 그런 부분도 해야 겠다."

'악바리', '도루' 키워드로 나눈 인터뷰의 남은 이야기는 일간스포츠 최초의 모바일야구신문 베이스볼긱 앱에서 모든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안드로이드폰 다운로드] [아이폰 다운로드]

한용섭 기자 orange@joongang.co.kr/ 베이스볼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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