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무려 4차례에 걸쳐 시민 12명을 죽거나 다치게 한 평택의 '묻지마 질주' 사건. 아파트와 상가 점포를 갖고 있고, 베트남 출신 부인과 세 아이를 둔 가장이 왜 이런 범행을 한 것인지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도 미궁 속에 있는 범행 동기, 김민상 기자가 추적했습니다.
[기자]
아직도 핏자국이 씻기지 않았습니다.
최근 경기도 평택의 번화가를 덮친 네 번의 교통사고.
무고한 시민 12명을 죽거나 다치게 한 장본인은 42살 한모씨.
목격자들은사고 직후 한씨의 태연한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치를 떱니다.
[이예진/사고 목격자 : 핫도그를 먹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가더래요. 운전을 핫도그를 먹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하더래요.]
일각에서 떠올리는 살인의 추억.
1991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무차별 차량 돌진으로 어린이 2명이 숨진 사고가 연상된다는 겁니다.
평택 사고의 피해자들도 아직 사경을 해맵니다.
회복한 사람도 끔찍한 기억을 지우지 못합니다.
[유또마/사고 피해자 : 이 손을…우산을 들었었는데 날 이렇게 쳐서 그 자리에서 쓰러졌었어요.]
운전자 한씨는 '활기찬 사람들을 보면 들이 받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말해 충격을 줬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취재진은 그가 베트남 여성과 결혼해 세 아이를 둔 가장이란 걸 확인했습니다.
[한씨 부인 : 막내만 (사건에 대해) 모르니까…매일 아빠 부르고, 먹을 때 아빠 찾고. 막내가 아빠 제일 예뻐했어요. 그런 일을 저지를 리가 없어요. 아이들한테도 잘하고…]
한씨는 아파트와 상가 건물 매장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차를 행인들에게 일부러 돌진시켰다는 사실을 주변에선 의아해 합니다.
[변호사/한씨 재산 관련 소송 담당 :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고 봐요. 비정상적인 말을 하기는 했는데, 누굴 죽인다는 그런 생각할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변호인이 은연 중 전한 한마디. 한씨가 했다는 '비정상적 말'이란 과연 뭘까.
취재진은 확인에 나섰습니다.
[인근 주민 : 무슨 대화하다가도 지네 형들이 죽이려고 감시한다는 등 생뚱맞은 얘기를 가끔 하더라고요.]
[한씨 부인 : 비행기 소리난다고 해요. 평택에 군부대 많아 하루에도
몇 번 나는데. 그걸 듣고 '빨리 나가야돼 큰일 나'라고…]
취재 결과 한씨는 과거에 '조현증' 즉 정신분열증으로 치료를 받았던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한씨 정신과 치료 의사 : 2011년 8월까지 치료를 했네요. 2010년부터 1년 정도 치료를 했어요]
한씨의 이상 증세에 대한 증언은 이어졌습니다.
[한씨 이웃 / 다문화 가정 봉사자 : 이분이 중앙정보부를 어떻게 아나. 정신분열증이 아니면 이런 부분을 하기 어려워서 약간 치료가 필요했었어요.]
사고 직후 태연한 모습도 조현증 증세일 수 있다고 전문가는 말합니다.
[이승환/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남들한테 해를 가한다고 해도 남들은 끔찍하게 느끼는데 (환자들은) 무덤덤하게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취재진은 이런 한씨가 최근까지 버스 기사로 일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조현증 치료를 받은 그가 어떻게 대중 교통을 다룰 수 있었을까.
[버스회사 관계자 : 그 사람 조회도 해봤는데 아무 이상 없었어요. 사람 쓸 때 (전 회사 통해서) 다 조회해봐요.]
여기서 대중교통 관리의 심각한 허점이 드러납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 현행 도로교통법상 6개월 입원한 사람에 한해서 시·도에서 (경찰로) 통보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증세가 어떻든 집에서 통원치료만 받았던 한씨는 통보 대상이 아닙니다.
한씨를 치료한 의사는 증상이 심해 입원을 권유했지만 강제할 방법이 없었다고 토로합니다.
[한씨 정신과 치료 의사 : 계속해서 입원을 권했어요. 매일 쫓아다니면서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여러 군데 알려줬어요. 입원이 필요하다고…]
강제 입원을 하려면 가족 2명 이상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한씨처럼 부모형제와 교류가 없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조현병 환자들은 뇌에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과다하게 분비돼 망상에 시달립니다.
치료는 이 분비를 완화시키는 약물로 대부분 이뤄집니다.
치료를 소홀히 하면 망상이 시작돼 어떤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공정식/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 : (조현증 환자) 범죄의 일반적인 범죄 횟수는 일반인보다 적지만 강력범죄 중 살인을 할 가능성은 6배 높아요.]
행인들을 향해 네 번이나 차를 돌진시켰던 한씨.
불과 한 달 전 버스를 몰 때 이런 사고를 저질렀다면 더 끔찍한 참극이 빚어졌을 수 있습니다.
시민들을 떨게 한 '묻지마 질주'의 장본인이 정신질환 환자였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통상적인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보내는 경고는 과연 우리의 교통 안전 관리가 제2의 '평택 묻지마 질주 사건'을 막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대대적인 점검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