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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화대 연설 때 중국어 비중 20%로 맞춘 이유는

입력 2013-07-01 09:51 수정 2013-07-01 09:54

박 대통령의 언어외교와 치열했던 한·미·일 외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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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언어외교와 치열했던 한·미·일 외교전

칭화대 연설 때 중국어 비중 20%로 맞춘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을 한국어로 할지, 중국어로 할지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박 대통령 방중 1주일 전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

"한국어로 연설하되 중국어를 20%가량 쓸 것이다."(방중 직전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

이 관계자의 말 그대로 박 대통령은 29일 칭화대(淸華大)에서 20분간 연설하면서 4분을 중국어에 할애했다. 연설 초입과 말미 인사말을 중국어로 한 것이다. 반면에 '새로운 한반도' 등 박 대통령의 동북아 구상을 밝히는 본론에선 한국어로 연설했다. 그래도 중국 대륙의 반응은 뜨거웠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그동안 연설에 쓸 언어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중국 전문가 10여 명에게 문의도 했다. '중국어로 해야 한다'는 의견과 '한국어로 해야 한다'는 의견, 그리고 '한국어로 하되 중국어를 일부 섞자'는 절충안이 엇갈렸다. 청와대 외교수석실은 고민 끝에 세 가지 옵션을 모두 박 대통령에게 올렸다.

그러나 외교부는 입장이 분명했다. "중국어는 보편어가 아니다"라며 줄곧 한국어 연설을 주장했다. 다른 외교안보 라인에선 지난달 8일 박 대통령이 미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100% 영어 연설을 한 전례가 있다는 반박이 나왔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영어는 미국어가 아니라 국제사회 보편어(Lingua Franka)이고 연설 장소도 의회였다. 중국어는 보편어도 아니고 연설 장소도 대학"이라며 재반박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자국어로 연설하고 통역을 쓰되 인사말 부분을 중국어로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중국어 연설 비율도 '20%' 수준으로 맞추기로 했다고 한다. 복잡한 절충안이 나온 배경엔 영어·중국어·프랑스어·스페인어 등 4개 외국어를 구사하는 박 대통령 특유의 '언어 외교'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역학이 함께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이 중국어로만 연설할 경우 국내 일각에선 "대통령이 중국에 굽실댔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국제정치적으로는 미 상·하원 영어 연설로 차별화된 '한·미 동맹의 특수성'이 빛바랠 우려가 있어 절충안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

김흥규(중국정치) 성신여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절충안을 택한 건 우리의 전통적 포지션(한·미 동맹)을 의식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며 "미 상·하원 연설도 일부만 영어를 썼으면 이런 논란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안보 라인에선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중국 편향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하는 데도 신경쓴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공식적으론 한·중 정상회담과 관련해 한국이 중국을 설득해 북핵 문제를 진전시킬 계기란 점에서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일본보다 중국을 먼저 방문했다. 또 박 대통령 취임 이후 한·중 관계는 전례 없이 밀착되는 분위기다. 그래서 워싱턴의 조야에선 "한국이 전통적인 한·미 공조에서 다소 이탈하거나, 미국이 중시하는 한·미·일 협력구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고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이런 외교적 시그널이 워싱턴에서 서울로 전달되면서 우리 정부는 다양한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박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와의 대화 자료(토킹 포인트)에 한·중 관계 진전과 한·미 동맹이 충돌하는 인상을 주는 표현이 들어가지 않도록 여러 차례 내용을 다듬었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박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북핵 문제에 관해 대단히 강력한 목소리를 냈고, 그동안 공전해 온 한·중·일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한 건 우리 국익을 1차적으로 챙긴 것이지만 미국 쪽 우려를 불식시킨 효과도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5월 서울에서 열기로 돼 있던 제6차 한·중·일 정상회의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으로 중·일 대립이 심해지면서 무기한 연기됐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이를 하반기에 열기로 합의해 결과적으로 중·일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한 셈이 됐다.

박 대통령은 일본의 과거사 왜곡 문제도 우리 국익과 미국의 견제를 고려해 등거리 외교 전략을 구사했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공동성명에서 "역사 등의 문제로 역내 국가 간 대립과 불신이 심화되고 있다"고 일본을 겨냥했다. 또 28일 시 주석과의 오찬에서 안중근 의사의 기념 표지석 설치를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을 직접 거명하며 비판하는 건 피했다. 정부 관계자는 "(두 정상이) 점잖지 못하게 일본을 직접 거론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교가에선 "박 대통령이 일본의 역사 왜곡에 중국과 공동전선을 펴면서도 동북아 갈등을 확산하는 모습을 피하는 절충안을 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대(對)중국 접근은 앞으로도 일본의 반발과 일본을 배려하는 미국의 견제를 촉발할 전망이다. 지난 27일 열릴 예정이던 한·미·중 1.5트랙 (반관반민) 전략대화가 다음달 말로 돌연 연기된 것도 그런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사상 처음으로 한·중·일 정부 관리들이 만나는 이 전략대화엔 우리 쪽에서 외교통상부 북핵정책국장, 미국 쪽에서 시드니 사일러 미 국가안보회의(NSC) 한국담당관, 중국 쪽에서 류제이(劉結一) 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이 나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 정부가 갑자기 불참을 통보해 7월 말로 연기됐다고 김흥규 교수는 전했다.

이 대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우리 정부에선 큰 소동이 일었다. 워싱턴을 방문한 외교부 고위 관리들은 "미국이 한·미·중 전략대화를 하지 않겠다면 우리도 한·미·일 전략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압박했다. 결국 미 정부는 한·미·일 전략대화를 지난 19일(한국시간) 워싱턴에서 먼저 여는 조건으로 다음달 말 서울에서 한·미·중 전략대화를 열기로 합의했다.

한편 미국의 불참 통보 배후엔 일본의 강력한 로비가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미국은 당초 한·미·중 전략대화에 긍정적이었는데 일본이 '한국이 한·미·일 구도에서 벗어나 한·미·중 구도를 만들려고 한다. 미국이 응하면 안 된다'고 압박하자 미국 측이 '대화 날짜가 한·중 정상회담과 겹친다'는 이유로 우리 측에 불참을 통보했다"고 전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일본의 대미 로비는 신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인 대니얼 러셀에게 집중됐다"고 전했다. 러셀 차관보의 부인은 일본인이라고 한다. 그 바람에 27, 28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미·중 대화 땐 3개국의 정부 인사는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채 학자들만 모여 진행됐다.

이 회의에서도 미국의 일본 감싸기는 계속됐다. 한국 학자들이 한·미·중 전략대화의 유용성을 강조하면서 "북한까지 참여한 4자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자"는 제안을 내놓자 미국 학자들은 "북핵 문제는 6자회담에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 중요한 파트너인 일본을 참여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지켰다.

대일 외교에 종사했던 전직 고위 외교관은 "미국의 동북아 외교 근간은 미·일 동맹이다. 일본이 작심하고 반대하면 한·미·중 전략대화가 다음달에도 이뤄지기 힘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은 한·일 관계와 중·일 관계가 모두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중 전략대화가 이뤄지면 더욱 고립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박 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으나, 한·중 관계의 진전은 동북아 구도의 현상을 변경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이에 대한 미국의 우려와 일본의 반발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교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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