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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도 못한 삼포세대 … 첫 스텝 엉킨 IMF세대 … 떠밀린 은퇴 베이비부머

입력 2012-11-21 03:35 수정 2012-11-21 09:00

외환위기 15년, 서민만 무너졌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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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15년, 서민만 무너졌다 (하)

1997년 외환위기는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이에겐 그때의 충격이 여전히 진행형이다. 세대도 다르고, 위기로 인한 충격도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외환위기 이후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는 것이다. 사회에 발을 내디딜 때 외환위기를 맞은 IMF(국제통화기금)세대(35~43세)와 팍팍한 현실 때문에 연애와 결혼·출산을 모두 포기했다는 삼포세대(25~33세), 그리고 외환위기 이후 준비 없는 은퇴를 맞고 있는 베이비붐세대(49~57세) 목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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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스펙에도 좁은 취업문 "연애·결혼·출산 포기"
31세 안태호씨 삼포세대 슬픔


출발도 못한 삼포세대 … 첫 스텝 엉킨 IMF세대 … 떠밀린 은퇴 베이비부머
"한 번 출발이 늦었을 뿐인데…. 영원히 출발 기회를 얻지 못할 것 같네요." 시민단체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해 주는 안태호(31)씨는 한 번도 회사에 다녀 본 적이 없다. 사립대 법학과를 나온 뒤 3년간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낙방 끝에 취업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게 지난해. 하지만 그를 받아 주겠다는 회사는 없었다. 안씨는 "서른이 다 되고 어학연수 한 번 다녀오지 않은 나에게 기회가 오겠느냐는 생각이 들더라"며 "마음을 접고 시민단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당시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위기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강원도 태백시에서 자영업을 하던 아버지의 수입은 확 줄었다. "친구들은 다 학원을 다녔지만, 저는 한 번도 그러지 못했어요. 지금도 부모님께서 미안해하시죠." 그를 서울의 대학에 입학시킨 것도 가족으로선 큰 결단이었다. 그는 주중엔 커피숍, 주말엔 예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삼포세대(1987~79년생)는 감수성이 한창 풍부한 10대에 외환위기를 겪었다. 위기 이후 취업경쟁은 치열하다 못해 살벌해졌다. '스펙'을 쌓기 위해 무한투자는 필수다. 안씨는 "어학연수는 기본이고 영어나 중국어학원을 다니느라 중·고등학생 못지않게 사교육비를 쓰는 친구도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취업난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통계청은 최근 10월 고용동향을 발표하며 "20대 고용률이 43개월 만에 최저치인 57%"라고 밝혔다. 20대의 절반 가까이가 일거리가 없다는 얘기다.

 취업이 안 되니 결혼과 출산도 미루게 된다. 이들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하지 못한다'는 뜻의 '삼포세대'로 불리는 이유다. 97년만 해도 남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28.59세, 여성은 25.71세였다. 지난해엔 각각 31.9세, 29.14세다. 첫아이를 낳는 나이도 같은 기간 28.28세에서 31.44세로 올라갔다.

 '내 집 마련'은 동화 속 얘기에 가깝다. 베이비붐세대는 돈을 빌려서라도 집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삼포세대는 그조차 이루기 힘든 꿈이다. 안씨 역시 고시 공부를 위해 얻었던 서울 신림동 월세방에서 4년째 살고 있다. 그는 "서울에서 4년제 대학을 나온 친구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나 파견직으로 일한다"며 "지금이 자력으로 수도권에 집을 살 수 있는 시대냐"고 되물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 젊은 삼포세대가 취업의지마저 잃어버리면 국가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청년층이 거꾸로 복지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15년간 7번 이직 … 상투 때 대출 받아 집 샀지만
39세 김동준씨 IMF세대 아픔


출발도 못한 삼포세대 … 첫 스텝 엉킨 IMF세대 … 떠밀린 은퇴 베이비부머
김동준(39)씨는 대학을 나온 뒤 15년 동안 직장을 7번 옮겼다. 전문대 졸업을 앞둔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졌다. 1년 전만 해도 채용 공고문으로 빽빽했던 학과 게시판은 몇 달째 휑했다. 졸업 전까지 한번도 면접 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처음으로 회사에 들어간 건 2000년. 2년 동안 공공근로와 임시영업직을 전전한 뒤다.


 철새 같은 인생은 계속됐다. 1년 반 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며 퇴사했다. 소프트웨어 벤처업체, 전자부품 제조업체를 거쳐 채권추심업체까지 흘러 들어갔다. 카드대란으로 신용불량자가 넘쳐나던 2004년이었다. "매일같이 사정 좀 봐달라며 우는 손님들을 상대하자니 괴로웠어요 " 해외 문구용품을 수입하는 지금의 회사에 입사한 게 5년 전. 그는 "이렇게 정착하기까지 너무 멀리 돌았다"며 "이게 다 외환위기 때문에 첫출발이 꼬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IMF(국제통화기금)세대'(1977~69년생)로 불리는 이들은 스스로를 '운 없는 세대'로 부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디디려 할 때 위기가 터졌다. 2000년까지 이어진 위기 때문에 상당수는 첫출발이 꼬였다. 이후에도 카드대란(2003년)과 글로벌 경제위기(2008년)를 연달아 겪으며 이직을 거듭했다.

 IMF세대의 고용률이 유독 다른 세대에 비해 낮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박세정 한국고용정보원 책임연구원은 "30대 후반 세대는 전후 세대에 비해 줄곧 낮은 고용률을 보였다"며 "중요한 시기마다 위기를 맞아 좋은 일자리를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정승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전문연구원도 "자신의 능력·적성 등과 맞지 않는 일자리로 첫 단추를 끼운 데다 사회초년생 시절 적절한 교육의 기회도 잃은 세대"라고 분석했다.

 집값 폭등락도 이들에겐 불리하게 작용했다. 겨우 사회에 자리를 잡고 가족을 꾸린 2000년대 중반에 이들은 집값 폭등을 겪어야 했다. 대부분 집을 마련하지 못했고 일부는 무리한 대출을 끼고 '상투'에 집을 샀다. 김씨 역시 2006년 8000만원의 빚을 지고 79㎡(약 24평형) 아파트를 마련했다. 그는 "지금까지 매달 30만원씩 꼬박꼬박 이자를 내왔는데, 집값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대 조영태(인구학연구실) 교수는 "이 세대는 한번도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느낌을 받아 보지 못한 세대"라며 "혹독한 취업난과 만혼 풍조가 이 세대부터 시작돼 피해의식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37세 때 날아간 일터 … 이젠 재기 쉽지않은 50대
52세 김창환씨 베이비부머 애환


출발도 못한 삼포세대 … 첫 스텝 엉킨 IMF세대 … 떠밀린 은퇴 베이비부머
김창환(52)씨의 직업을 뭐라 해야 할까. 그는 강원도 평창군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와 경기도 안양시 평촌의 경매사무소에 함께 적을 둔 직원이다. 하지만 사무실에 나가는 건 일주일에 2~3일 될까. "대중없어요. 일이 없는데 나가서 뭐해요." 그는 올 들어 딱 2건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최근엔 부업도 시작했다. 방수설비를 하는 지인에게 일을 배워 가끔 건설현장에 나간다. 일당은 9만원. 한 달에 보통 열흘, 운이 좋을 땐 보름씩 일이 들어온다. 50㎡(약 15평형) 임대아파트에 사는 네 가족은 요즘 이 벌이에 기대 산다.

 정처 없는 삶이 시작된 건 외환위기 때다. 그때까지는 유흥업소에 출연할 가수를 연결시켜 주고 수수료를 받는 기획사를 운영했다. 잘나가던 사업이 고꾸라진 건 1997년 말. 위기가 터지고 석 달 만에 거래하던 유흥업소의 반 정도가 문을 닫았다. 늦게 얻은 큰딸이 아직 기어다니던 때다. "넋 놓고 있다간 아이 분유도 못 먹이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사업을 접었다. 이후 건설일용직과 부동산중개업소 등을 전전해 왔다.

 김씨 같은 베이비붐세대(1963~55년생)에게 외환위기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고도성장과 평생고용' 신화가 단번에 무너졌다. 그것도 한창 일할 시기인 40대 초·중반 때 닥친 일이다. 베이비붐세대의 상당수는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외환위기 때인 97~98년이 '베이비붐세대 1차 퇴직기'로 불리는 이유다. 적지 않은 자영업자가 김씨처럼 가게를 접거나 직장을 나왔다. 황기돈 한국고용정보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들은 빈곤으로 가는 일방통행길을 걷고 있다"고 말한다. 퇴직금이 남은 이들은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십중팔구 퇴직금을 날리고, 경비·건설일용직 등에 취업하며 빈곤층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경제위기가 잦아지며 '추락'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김씨는 부동산중개업자로 자리를 잡나 했던 2008년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그 뒤엔 카드 빚으로 생활고를 해결해야 했다. 나이가 들수록 새 출발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또래 중개업자들도 절반 넘게 문을 닫았다. 직장에서 살아남은 이들도 불안하 다. 이제 50대 초·중반이 된 이들은 본격적인 은퇴기인 '2차 퇴직기'를 맞고 있다. 이들 상당수가 자영업에 뛰어들며 또 한 차례 '생존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황원경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베이비붐세대는 부동산 자산의 27%를 갖고 있다"며 "이들의 소득 감소와 집값 하락은 한국경제 전체의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임미진·김혜미·위문희 기자. 사진=안성식·신인섭·김도훈 기자

임미진.김혜미.위문희.안성식.신인섭 기자 inseo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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