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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규의 아이디어 창고] 16. 스피드왕 번개

입력 2012-04-2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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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규의 아이디어 창고] 16. 스피드왕 번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일을 하다 보면 전혀 엉뚱한 사람이 이익을 보기도 한다.

1997년 나는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자동차 완구 '스피드왕 번개' 개발을 구상했다. 당시 로봇 완구를 많이 개발한 나로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 어린이들은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 자리에 앉아 로봇 완구를 가지고 놀았다. 나는 야외에서 완구를 가지고 활동적으로 즐기는 건전한 어린이·청소년 놀이문화를 만들고자 했다.

리모컨 조종 자동차만으론 뭔가 부족했다. 그래서 인라인스케이트를 결합시킨 애니메이션 제작에 투자했다. '아이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면서 리모컨으로 자동차를 조종하는 경기를 한다면 더 박진감 넘치는 재미있는 놀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스피드왕 번개'를 알리려면 그 같은 스토리를 가진 애니메이션이 필요했다. SBS와 내가 애니메이션 제작비를 반씩 투자하고, SBS가 방영하기로 했다.

1998년 5월 방영을 목표로 '스피드왕 번개'의 애니메이션과 완구 제작을 동시에 추진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다섯 명의 선수가 한팀을 이루어 '스피드왕 번개'를 조종해 여러 코스가 있는 트랙의 결승점을 상대 팀보다 먼저 통과하면 승리하도록 스토리를 짰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과 완구를 연계해 제작한 사례는 '스피드왕 번개'가 처음이었다.

리모컨 조종 자동차는 그 전까지 수입품들이 있었다. 내가 만든 제품은 100% 국산이었다. 완구계의 엔지니어들을 모아 팀을 구성해 완구를 개발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점이 발생했다. 리모컨 조종하는 전파 사용이 대단히 까다로웠다. 처음에는 그냥 전파만 개통하면 되겠지라고 여겼다. 근접지역에 다른 리모컨 조종 자동차가 있으면 그 리모컨 전파의 영향을 받아 내 차까지 움직이는 식이었다. 심지어는 자동차가 완전히 다른 전파에도 살짝 반응하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벌어졌다.

야외 공간에서 테스트하면 어김없이 다른 전파의 영향권에 있었다. 결국 특별히 박스형 집 모양의 별도 테스트 공간을 만들어 자동차를 하나씩 테스트를 해야 했다. 자동차에 각각 전파의 고유 번호를 부여해 운전자의 리모컨에만 반응하도록 하였다.

'스피드왕 번개'의 스피드는 시속 13~15㎞까지 나왔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일본 다카라토미의 리모컨 조종 자동차 'GX버기'가 22㎞ 정도이니 당시로선 꽤 대단한 속력이었다.

애니메이션 '스피드왕 번개'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거리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 같은 현상에
정작 미소지은 것은 애니메이션 '스피드왕 번개'와 아무 관련없는 인라인스케이트 제작사였다. 물론 '스피드왕 번개' 자동차도 많이 팔렸지만
진짜 대박은 인라인스케이트였다.

'스피드왕 번개'는 내 의도대로 아이나 청소년들을 거리로 나오게 해 그들의 정신·육체적 건강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살다보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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