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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감독이 말하는 "만화, 축구 그리고 인생"

입력 2012-01-0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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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감독이 말하는 "만화, 축구 그리고 인생"

"나 이 정도면 자질이 있는 거지?"

오랜만에 펜을 잡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는 최강희(5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표정은 아이처럼 설레었다. 즉석에서 자신이 그렸던 만화에 출연했던 남자 주인공과 강아지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 꿈이 만화가"였다는 최 감독의 실력은 상당했다. "당장 만화가로 데뷔하셔도 되겠다"는 칭찬에 "다 이 정도는 그리지 않느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최 감독은 자신이 그린 만화를 한참이나 쳐다보며 추억에 젖어들었다.

전북 현대를 K-리그 최고의 팀으로 만들고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최 감독은 어린 시절 진지하게 만화가를 꿈꿨다. "아마 축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만화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일간스포츠가 최 감독이 그렸던 만화를 단독 입수했다. 고이 간직하던 만화는 총 4권으로 축구만화('불타는 그라운드' '4인의 악당')와 잡지('소년만화'), 무술만화('야망의 흑무사') 등 장르도 다양했다. 최 감독의 꿈과 열정, 특유의 위트는 만화에도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동네 말썽꾼 최강희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아주리. 최 감독이 나고 자란 곳이다. 시골마을에서 자란 '소년' 최강희는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고 동네에서 싸움질을 일삼던 말썽꾸러기였다. 동갑내기 친구 이명수(최 감독에 따르면 친구 이명수는 후에 정말로 만화가가 돼 자신의 이름을 내건 만화를 냈다고 한다)와 함께 틈만 나면 집에서 만화를 그렸다. 부모님과 형들은 그런 최강희가 못마땅했다. 최강희의 아버지는 당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큰 형과 작은 형은 모두 학교에서 전교 1등을 다투는 수재였다. 최강희는 그야말로 '돌연변이'같은 존재였다.

최 감독은 "만날 공부는 안 하고 만화만 그린다고 형들에게 혼났다. 친척들도 '형들은 공부를 잘 하는데 어디서 저런 놈이 나왔냐'고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래도 만화에 대한 그의 집념을 꺾을 수는 없었다. "따로 배운 적은 없다. 그냥 내가 보고 들었던 것들을 상상력을 발휘해 그리는 일이 마냥 좋았다"고 최 감독은 말했다. "성적표에 다른 과목은 항상 '양' '가'를 받아도 미술과 체육만은 '수'를 놓치지 않았다"고 말할 때는 은근히 자랑스러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좋아하던 만화 그리기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최 감독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양평 강하초등학교에서 서울 용두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축구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중학교(대광중)에 진학해서는 공부도 열심히 해야했다. 두 형이 워낙 공부를 잘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같이 책상에 앉아 책을 봐야 했다.

최 감독은 "형들이 새벽까지 책을 보는 통에 덩달아 나도 잠도 못 자고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책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운동도 머리가 좋아야 잘 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축구 지식은 그라운드에서 몸으로 배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 감독이 그린 만화를 보거나, 최 감독이 기자회견장에서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 정말로 머리가 좋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접한 만화는 '공포의 외인구단'

한동안 만화를 끊고 지냈지만 애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우신고등학교에 진학해 다시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생겼다. 만화를 잘 그린다는 사실을 안 동료의 성화에 못 이겨 그린 만화가 '4인의 악당'이었다. 최강희와 함께 축구부 생활을 함께 했던 실존 인물들이 등장한다. 같은 학년인 동기들에게는 신촌톱날, 청량리 땜통, 제주도 구렁이 등 위트 넘치는 별명을 붙여줘 만화의 재미를 더했다. 최강희의 별명은 '장위동 놀부'였다. "어떻게 해서든 남을 골려주는 방법을 연구하는 현대판 놀부"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그러나 학창 시절 만화 집필은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다시 만화의 세계에 빠져든 건 울산 현대 선수로 활동하던 1986년 즈음이었다. 당시 최 감독은 담배를 끊고 당구장 출입을 삼갔다. 운동을 제외하면 마땅한 취미 생활이 없던 터에 룸메이트가 만화를 10권 넘게 빌려왔다. 그게 바로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최 감독은 "운동 끝나면 공포의 외인구단 보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고 말했다.

만화를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간직한 이유도 특별하다. 결혼 직후 장기 합숙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 사이 어머니가 아내에게 최 감독의 예전 물품이라며 박스 하나를 건넸는데, 거기에는 만화와 함께 고교 때 여자친구에게 쓴 연애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 내용을 모두 읽어본 아내는 한동안 뾰루퉁해졌다는 후문이다. 최 감독은 "만화가 있었는지도 잘 몰랐는데 어머니가 잘 보관하고 계셨다. '연애편지' 사건으로 만화가 남아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만화는 지금껏 최 감독이 아끼는 보물로 간직해왔다.

오명철 기자 [omc102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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