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다루는 국회 청문회에서 프로야구와 관련된 언급이 나왔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증인으로 나온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KBO에 특강을 오지 않았나"고 물었다. 김 전 실장이 김 전 차관을 과거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 데 대한 질문이다. 김 전 실장은 1995~1996년 KBO 총재를 지냈고, 김 전 차관은 1991~1994년 OB 베어스 기획홍보팀 과장으로 야구계에 몸담았다. 이후엔 수원대 체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프로야구 관련 여러 활동을 했다.
국회 회의에서 프로야구가 언급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에 프로야구가 덩달아 거론되는 건 야구 팬으로서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 국회에선 야구와 국회의 관계가 어땠는지 조사해봤다.
▶아베와 호리우치의 농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5년 4월 8일 국회 예산위원회에서 프로야구 투수 출신 참의원에게 질의를 받았다. 질의자는 호리우치 쓰네오 의원. 호리우치 의원은 1966~1983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며 203승을 기록한 수퍼스타였다. 2013년 비례대표 승계로 참의원이 됐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팬이다. 요미우리와 같은 도쿄 연고인 야쿠르트 팬은 당연히 요미우리를 싫어한다.
질의에서 호리우치 의원은 2020년 도쿄올림픽 경기장 관련 예산 확보에 관한 질문을 했다. 아베 총리는 답변에 앞서 "호리우치 의원이 현역 선수로 뛸 때는 '안티 자이언츠'였다. 응원하는 팀이 진 아픈 경험이 많았다. 정말 밉살스러운 투수였고, '이 사람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며 야구 이야기로 답변을 풀어나갔다.
지금은 의원직에서 물러났지만, 호리우치는 일본 국회에서 '야구진흥의원연맹' 설립을 주도했다. 이 모임은 자민당 소속 의원들이 주축이며, 도쿄 올림픽에 야구와 소프트볼의 정식종목 복귀를 지원해 왔다. 또 해당 종목 경기의 후쿠시마 개최도 적극 지지했다. 야구진흥의원연맹은 우익 성향 의원이 다수 포함돼 있다. 우리 입장에선 반갑지만은 않은 단체다.
▶야구선수 신분, 국회에서 논의되다
1978년 3월 2일은 일본 프로야구에 큰 전환점이 된 날이다. 참의원 법무위원회 질의에서 나이토 이사오 일본 공산당 의원은 헌법과 노동조합법, 노동기준법을 인용해 프로야구 선수가 노동자 신분이라고 주장했다. 이유는 세 가지.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며, 사용자에게 종속돼 지휘를 받는다. 그리고 노동력을 바탕으로 조직의 수익을 창출한다 등이었다. 프로야구 선수의 노동자성이 인정되면 노동조합 설립이 가능해진다.
나이토 의원의 질의에 대해 후생노동성은 처음으로 '프로야구 선수는 노동자'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1980년 일본프로야구선수회가 설립된다. 선수회는 노동조합과 사단법인이라는 두 개 법인으로 등기돼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도 논의됐다. 마루야마 마사오 사회당 의원은 "신인 선수에게 구단 선택의 자유가 없고, 선수의 희생으로 전련평준화를 꾀하는 건 민법 90조 위반 아닌가"라고 질의했다. 일본 민법 90조는 "공공질서나 선량한 관습에 반하는 사항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한다. 세토야마 미즈오 당시 법무장관은 "90조 위반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답변과 함께 "신인 선수에게 불리하다는 건 분명하다. 야구계가 스스로 개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답변했다.
이후 열린 중의원 법무위원회는 "드래프트 자체가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며, "프로야구의 건전한 발전에 드래프트 제도가 차지하는 의의가 크며, 공공질서나 미풍양속에 반한다고까지는 할 수 없다"며 드래프트가 위법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프로야구 16개 구단 체제
올해 2월 15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고토다 마사하루 의원은 '프로야구 16구단 구상'에 대해 대정부질의했다. 현재 12개인 프로야구단 수를 16개로 늘리자는 구상은 2014년 5월 제기됐다. '아베노믹스'의 내수경제 촉진을 목적으로 자민당 일본경제재생본부의 ‘일본재생비전’ 안에 포함됐다.
도쿠시마, 오키나와, 가고시마 등 야구 인프라는 충분하지만 연고지 프로야구단이 없는 지역에 새 구단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이시바 시게루 지방창생 담당장관은 "구단 증설이 어떤 효과를 낳는지 지역공헌, 일자리 창출 등 관점에서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일본 야구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주간 아사히는 "요미우리를 비롯한 센트럴리그 구단들은 반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나 한신 같은 대형 인기 구단 입장에선 '파이'를 나눠야 한다. 반면 퍼시픽리그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호시노 센이치 부회장은 "확장 드래프트 등 새로운 4개 구단에 대한 전력 균형 정책만 맞는다면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스포츠잡지 넘버 조사에 따르면 야구 팬들은 찬성 55%, 반대 45%다.
국회에서도 반대 의견이 있다. 오가와 준야 민진당 중의원 의원은 '16구단 구상'을 "10만 엔을 100만 엔처럼 보이게 하려는 술수다. 현실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오가와 의원은 아베 총리에게 "종군위안부 피해자에게 자필편지로 사과할 응향이 없는가"라고 물어보기도 했던 정치인이다. 또 고교 시절 야구선수로 고시엔대회 출전 경험도 있다. 오가와 의원은 "16구단보다 중요한 건 구단과 선수 대표가 대등하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다. 여전히 ‘선수 따위’라는 말을 뒤에서 듣고 있다.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