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열풍은 올해도 계속된다. 지난 해 시작된 '90년대 추억 공유 콘텐트'가 올해 더욱 거세게 대중문화계를 장악하고 있다.
90년대 콘텐트의 물꼬는 지난 해 수지를 '국민첫사랑'으로 등극시킨 영화 '건축학개론'이 텄다. 3월 개봉 후 400만 관객을 동원했고, 그 뜨거운 인기바통은 지난 해 7월 tvN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로 이어졌다. HOT와 젝스키스 등 '아이돌 1세대'가 활약했던 1997년을 배경을 담아내며 '신드롬 급' 인기를 모았다. '응칠'의 인기로 90년대 이야기의 힘이 확인되자 올해는 드라마·공연·예능 등에서 너나 할 것없이 본격적으로 90년대의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고 있다.
▶드라마·공연·예능 온통 90년대 이야기
요즘 가장 핫한 90년대 아이콘은 '핫젝갓알지'다. 처음 들으면 '도대체 이게 뭐지?'란 당혹감을 주는 이 신조어는 90년대 데뷔해 큰 인기를 얻었던 HOT,젝스키스,god,NRG를 조합한 팀명이다. 지난 4월 첫 선을 보인 케이블채널 QTV '20세기 미소년(매주 화요일 오후 9시 50분 방송)'에서 HOT의 토니안과 문희준, 젝스키스의 은지원· god의 데니안·NRG의 천명훈이 함께 출연하면서 결성됐다. 프로그램의 인기에 힘 입어 핫젝갓알지는 '20세기 미소년' 뿐만 아니라 KBS 2TV '불후의 명곡', '해피투게더' 등에 함께 출연해 지난 날의 얘기로 웃음을 끌어내고 있다.
드라마는 삼풍백화점 참사나 IMF 등 90년대의 굵직한 사건·사고를 소재로 한다. 지난달 29일 첫 선을 보인 MBC 주말극 '스캔들 :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은 1995년 6월 29일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드라마다. 주인공 조재현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90년대 대표적인 아버지상을 제시하며 동시에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그려낸다. 지난 1일 첫 방송된 SBS 월화극 '황금의 제국'은 1990년대부터 2010년까지 한국 경제사 격동 20년을 배경으로 한다. 현재 '황금의 제국'은 신도시 개발에 한창이던 1990년대를 그리는 중. 이요원과 고수의 패션스타일과 각종 아이템을 통해 시청자들은 90년대를 회상한다. 제작진은 "알이 큰 안경 등 90년대 유행 아이템을 사용한다. 90년대를 재현하기 위해 당시 사용했던 소품에 신경쓰고 있다"고 전했다.
KBS 1TV 일일극 '지성이면 감천' 역시 90대 사회경제적 이슈를 다룬 드라마다. 동네 빵집을 운영하는 주인공 박세영의 가족이 대형 프랜차이즈 업주들과의 경쟁 속에서 부진한 실적을 만회하지 못 해 허덕이는 내용을 담았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IMF) 사태 이후 경기가 침체되고, 설상가상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이 골목 상권까지 잠식했던 당시 모습을 담아낸다.
'응칠'의 시즌2 격인 tvN '응답하라 1994'도 오는 9월 방송을 앞두고 있다.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 1994년대가 배경이다. 농구대잔치와 서태지와 아이들, 미국 월드컵 등을 주요 아이템이다.
9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은 가수들이 총 출동하는 '청춘나이트 콘서트'는 최근 시즌2를 맞이했다. 김건모·룰라·임창정·김현정·현진영·김원준 등 90년대 당시 최고로 활약한 가수들이 출연해 나이트클럽 콘셉트 무대에서 이색 공연을 펼친다. 지난해 10개 도시에서 총 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데 이어 2년 연속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90년대 열풍 향후 몇년 지속될 듯…문화계 중심이 90년대 학번으로
전문가들은 90년대 콘텐트의 인기는 향후 몇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아이돌 팬덤이 본격 시작된 90년대에 문화적 혜택을 받은 세대들이 대중문화계 전반을 이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60년대 후반 70년대 생 제작진이 메인PD·메인 작가를 맡기 시작하면서 90년대 콘텐츠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황금의 제국'의 조남국 CP와 '스캔들'의 김진만 PD는 각각 1965년생과 1968년생이고, '응칠'과 '응답하라 1994'를 제작한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는 모두 1975년생, 94학번이다. 방송 관계자는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제작진이 추억을 곱씹으며 콘텐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제작진이 실제로 경험한 사회적 이슈와 분위기를 리얼하면서도 함축적으로 그려내자 시청자들이 이에 공감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사회의 중심축을 이루는 세대가 90년대 학번인 것도 '90년대 콘텐트'가 꾸준히 생산되는 이유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문화의 경우 구매력이 있고 문화적인 욕구가 큰 핵심 활동 세대에 따라 트렌드가 변한다. 현재는 90년대 학창시절 및 젊은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세대로 성장했다. 이에 따라 70~80 열풍이 시들고 90년대 열풍이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60~70년생들이 나이가 들면서 가장 화려하고 즐거웠던 과거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사회가 점점 디지털화되고 빠르게 돌아갈수록 아날로그적 감성이 담긴 콘텐츠를 찾기 시작한 것"이라며 "주 시청자층이자 핵심 활동 세대인 이들의 선호에 따라 콘텐츠가 생산되는 건 당연한 흐름"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