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운동가로 활동하다 중국에서 구금됐고 고문까지 당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쉬쉬했습니다.
오늘(1일) 피플앤토크, 김영환 북한인권운동가를 모셨습니다.
Q. 현재 건강은?
- 현재 특별히 이상한 것은 없다. 간단한 건강검진만 받았고 정밀진단이 필요하다.
Q. 중국 구금 기간 중 어떤 고문을 당했나?
- 체포된 직후 3일째 되는 날 수갑을 대단히 아플 정도로 세게 뒤로 채우고 11시간동안 있었다. 그 이후에는 내 신분이나 역할이 드러난 이후 일정기간동안 고문이 없었다. 그러더니 상부에서 지시가 있었던지 13일째 되는 날부터 본격적인 고문이 있었다. 4월10일부터 16일 새벽가지 6일동안 잠 안재우기 고문을 당했고, 그로부터 4일째 되는 날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된 상태에서 오후 7시부터 오전 6시까지 11시간동안 물한방울 주지 않고 서있게 했다. 마지막 4월15일 오후 5시,6시경부터 구타와 전기고문을 했다. 50cm정도 되는 전기봉에 고압전류를 흐르게 해 옷 속 가슴과 등부위에 넣었다가 뺐다가 하는 고문을 했다. 보도되기 전 상황이다.
Q. 중국은 대체 왜 무엇을 얻고자 고문했나?
- 처음에 잡혔을 때 변호사와 영사를 만나기 전에는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국가안전과 관련된 사안은 변호사 접견을 허용할 수 없다고 했고 영사에게는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영사를 만나기 전에는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그쪽에서 1차 요구는 묵비권을 풀고 진술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1차적인 관심사는 중국내에서의 조직망이었고 나아가 한국내 조직망까지 관심있었다. (다른 의도는?) 처음부터 우리의 모든 것, 조직활동, 북한 조사활동, 북한 사람을 만나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심지어 80~90년대 활동했던 것까지 모든 것을 알고 싶어했다.
Q. 생명의 위협 느끼는 상황?
- 완전히 고립된 상황에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는 상황이어서 생명의 위협도 느꼈다. 안전부 요원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에 보내버리겠다고도 했었다. 그때가 4월15일이 김일성 생일이어서 마침 잘됐다, 북한에 너를 보내면 북한이 좋아할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Q. 중국은 미리 체포하려 준비하고 있었나?
- 이번에 잡힌 4명중 3명은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사전에 전화감청, 인터넷 감청 등이 있었다. 나를 조사하는 태도나 조사내용을 볼 때 나의 경우는 나를 노린 것은 아닌 듯 하다. 누군가를 기다린 것은 사실인데 나라는 것은 사전에 몰랐던 것 같다.
Q. 북한에서 중국정부에 요청이 있었다고 보나?
-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사건 발단 자체가 나를 제외한 3명중 한 명이 북한으로 돌아가서 보위부에 검거되서 관련 사실이 나왔고 북한에서 중국에 통보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시작되 것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북한과 중국간에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Q. 4월 26일 1차 영사접견 때 고문 사실을 얘기했나?
- 그날은 아직 안전부에 구금되고 구치소로 이송되기 전이었다. 안전부 요원들이 옆에 있는 상황에서 영사에게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얘기하기는 힘들엇다. 인권침해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자리에서 말하기 어렵다고 간접적으로 얘기했다. (그 후 달라진 조치는 없었나?) 당시 이미 모든 조사가 끝나고 구치소로 이감되기 이틀전이어서 특별한 상황 변화는 없었다.
Q. 한국 정부는 어떤 대응을 했나?
- 중국에 영사접견을 지속적으로 요청했었다. 2차 영사 접견때 나에게 와서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중국이 거부해서 못만났다고 얘기했다. 영사 접견권이라는 것이 교민들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인데 29일째 되는 날에게 겨우 영사를 만난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싶다. (그후 한국 정부 대응이 바뀌었나?) 구금된 상태여서 한국정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모르겠다. 간수들도 특별한 바뀐 게 없었다.
Q. 가족들도 일체 못만난 것?
- 전혀 만나지 못했다. 가족 면회나 서신도 보낼 수 없었다. 중국에서는 미결수에게 서신과 접견을 전혀 허용하지 않고 있다.
Q. 고문 사실 묵언하다 밝히게 된 이유
- 입국한 첫날 조사받으면서 이 부분(고문, 가혹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서 나는 일시적으로 한-중관계가 어려워지더라도 장기적으로 진실을 정확히 알리는 것이 한-중 관계의 올바른 발전를 위해서 필요하므로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에 대해 정부당국에서 반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당국에서는 발표 시기나 과정을 신중히 해달라고 했다. (첫 기자회견에서는 안밝혔고 그후 심경 변화?) 기본적으로 이 사실을 알려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다만 중국에서 피신중인 동료들이 몇일 안에 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들이 마무리되고 하려고 했는데 내 의사와 상관없이 언론에서 먼저 나와서 밝히게 됐다.
Q. 중국 외교부 고문사실 부인에 대한 생각
- 중국의 그동안 태도로 봐서 충분히 예견됐던 바다. 그러나 시대가 많이 바뀌고 중국도 국제적 위상이 바뀐 이상 기존 태도를 고수하기 보다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중국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적대시하는 입장에서 밝힌 게 아니라 중국의 인권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또 진실을 알리려는 차원이었다.
Q. '민형사상 고소' 변호사와 협의 중?
- 민형사상 고소를 생각하고 있는데 중국은 법절차도 우리와 많이 다르고, 가해자를 특정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할 지는 모르겠다. (지금 보면 고문한 사람들 알 수 있나?) 얼굴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름은 모르겠다.
Q. 당시 고문당한 증거가 있나?
- 갖고 있는 고문의 증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전기고문 당할 때 비명 소리를 다른 방에 있던 동료가 들었다. 과거 한국에서 전기고문은 몸 한 부위를 집중적으로 하는데 중국의 전기고문은 부위를 바꿔가면서 해서 시간이 지나면 흔적이 사라진다. 치밀하게 미리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Q. 외교부와 구체적으로 협의한 내용은?
- 구체적 협의된 부분은 없다. 접촉도 없었다.
Q. 석방대책위 '중국 고문 국제법상 조치' 검토
- 국제사회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한다면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Q. 중국 측이 보는 탈북자에 대한 시선
- 중국의 탈북자에 대한 정책이 특별히 바뀐 것은 없다. 북한은 탈북자에 대한 처벌이 10년전부터 약화돼 왔다. 그러나 국경 경비 등을 대단히 강화해서 탈북이 많이 줄었다.
Q. 중국에서 추방, 앞으로 5년간 입국 금지
- 그렇다. 정확히 몇 년인지는 잘 모르겠다.
Q. 북한은 김정은 체재 이후 변화가 있나?
- 변화 조짐이 보인다는 주장이 많이 있는데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과거 김정일 체재하에서도 변화 조짐이 보이다가 일시적으로 그쳤기 때문에 좀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Q. 일부에서는 북한의 명망 있는 인사를 탈북하려 해서 그런 것이라고?
- 그런 보도를 나도 봤으나 기획 탈북을 하려거나 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