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캐머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는 3D 기법으로 영화제작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놓았다. 지금도 '타이타닉' '미녀와 야수' 등이 3D로 부활해 재개봉되고 있는데 '아바타'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다.
1998년 SBS '인기가요'에 등장한 3D 댄스 자키 '룰루랄라'는 당시 혁신적인 캐릭터였다. 힙합 복장에 선글라스를 낀 이 캐릭터는 '인기가요' 중간 중간 등장해 가요순위와 댄스곡을 소개하곤 했다. 또한 모션 캡처(아바타가 센서에 연결된 사람의 동작을 따라하도록 한 기법)를 이용해 움직이는 3D 캐릭터로 시청자에게 댄스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룰루랄라' 역시 내 손에 맡겨졌다. 당시 댄스를 추며 대결하는 아케이드 게임 'DDR'이 선풍적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룰루랄라'도 'DDR'의 트렌드를 배경으로 개발된 측면이 컸다. 나는 평범한 인형을 만들기 싫어 '룰루랄라' 인형 속에 메카닉을 넣었다. 주변에서 박수를 치면 소리를 인식해 자동적으로 힙합을 추는 인형으로 개발했다. 남들은 귀찮아서라도 하지 않던 고민과 시도였다.
격렬하게 힙합을 추는 인형을 만든다는 건 쉽지 않다. '룰루랄라'는 상체 위주로 움직이는 인형이 됐다. 하체가 움직이면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건 인형이 아니고 로보트라 할 수 있다. 힙합바지의 널찍한 하체에 축의 중심을 잡아 하체는 비교적 무겁게, 상체는 가볍게 해 소리에 의해 춤을 추게 했다.
개발 중 시행착오도 있었다. 머리를 흔들면서 춤을 추다보니 선글라스가 자꾸 떨어졌다. 소비자가 선글라스를 다시 씌우는 것도 스트레스 아닌가. 그래서 선글라스를 아예 머리에 붙여버렸다.
'룰루랄라'가 팔을 휘저으며 춤을 추다보니 옷이 문제가 됐다. 옷까지 따라 움직이다 보니 몸에 끼어서 작동하는데 불편해했다. 옷감도 부위별로 딱딱한 곳과 유연한 곳을 구분해 디자인했다.
예상대로 '룰루랄라' 인형의 인기는 꽤 컸다. 제작이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했다. 인형이 팔릴 때마다 우리는 캐릭터 제작자에 로열티를 지불했다. 당시 SBS와 제작자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지금까지도 많은 캐릭터 제작자들에게 자신감과 상상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인기가요' MC였던 김진과 김소연이 '룰루랄라'와 장난쳤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힙합을 추는 인형은 지금의 정서로도 쿨하다. 언젠가는 '룰루랄라'가 모션 캡처 3D 인형으로 족보의 맨꼭대기에 오를 날이 오지 않을까. 역사란 오늘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는 것이니까.